껍데기는가랏
기우
푸른 별 안에서 물들이 아래로 흐를 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시간들이 가라앉는다. 텅 비어가는 가슴 속으로 엊그제 300mm가 넘는 강물이 하늘에서 땅으로 흘렀다.
무성하게 자라 검은 초록이 되었던 상처의 갈대들은 날 선 몸을 바닥에 뉘었다. 공간이 폐쇄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화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시나리오는 사람들이 쓰고 있었다. 푸른 별은 스스로 알 수가 없었다, 은하수 너머 다른 행성에서 사는 알파의 눈길은 벌써부터 푸른 별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백 년 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나타난 백인들은 먼 행성에서 날아온 또 다른 알파이며 우주인이었을까. 인디오들의 역사는 그렇게 부정되었다.
역사는 경험이요, 경험의 산물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부정확하다. 알파는 그렇게 지구를 바라보았고 지금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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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에베레스트는 높이가 8,882m로 하늘에 닿아 있다. 하늘은 실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데 하늘은 하늘이라고 한다.
하늘은 분명 머리 위에 있다고 하지만 알파에게 위아래가 없다. 허깨비가 웃는다. 동그란 푸른 별에서 안데스 산맥은 6,000m가 넘는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가도 머리에 눈을 얹고 있는 산줄기가 끝이 없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히말라야와 대칭이지만 높낮이를 따진다. 누가? 알파에게는 높이가 없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는 동그란 별 안에서 맴돌고 있다. 우주의 낮은 곳으로 물이 빠져나가야 하는데, 에베레스트산 위의
바위덩어리들은 모두 무한 허공으로 낙하해야 하는데, 동그란 푸른 공에 그것들은 군더더기처럼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뉴욕의
사람들은 옆으로 누워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아마존강이나 황하는 모두 공간에서 곡선으로 휘어 올라갔다가
내려가며 흐르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데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라는데 사람도 이를 닮아 착하다고 하는데 알파는 어제부터 잠도 자지
않고 관찰하고 있다. 바이러스들이 선악이라는 이상한 개념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다. 알파에게는 눈이 없다. 알파는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 전혀 구체적인 모양을 지니고 있지 않는 선악을 알파는 감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동서남북을 정해놓고 사는데 알파는 헷갈리고 있다. 푸른 별은 방향이 없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풍향계를 만들고 전쟁놀음까지 하고 있다.
왜 저리 서로를 죽이고 있는 것일까. 동서남북도 없는데 무슨 근거가 있어 저리 싸움을 하는 것일까. 푸른 별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오래되었다.
돌연변이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바이러스가 종횡무진으로 숙주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별의 가슴 안에서 별짓을 다하고 있지만 기이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멸종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최근 들어 알파에게 푸른 별의 변이가 느껴진다. 별의 이마가 벗겨지고 있다. 남극에 있던 오존이라는 머리털이 온통 벗겨져 나가고 있다.
저러면 아마 바이러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푸른 별이 자생력을 지니고 있나 보다. 가슴 속에서 분탕질을 일삼는 바이러스들을 모두 없애려 작정한 것일까.
태어나면서부터 보이지 않는 장님이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에게도 사과는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땅으로 아래로 떨어진다. 땅에 부딪칠 때 둔중한 소리를 낸다.
보이지 않아도 안다. 들리지 않아도 듣는다.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허공을 가르는 빛에 의지해서 색을 읽는다. 물건들에게 색이 있음이
아니라 물건을 이루고 있는 원자구성이 빛을 선택하여 반사를 함으로써 색깔을 만든다. 빛이 없다면 사물에게는 색이 없다. 태양의 빛에게서 사람들은 색을 볼 수가 없다.
태양은 우주 안에서 모래알보다도 작다. 장님이 따로 없다. 사람들의 귀는 들을 수 있는 음파의 영역이 좁다. 돌고래들이 보내는 초음파를 들을 수가 없다. 우주는 파동으로
가득 차 있다는데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귀머거리가 달리 없다. 당신들이 보는 것은 모두 허깨비다. 허깨비도 허깨비임이 분명하다고 떠든다. 들리는 소리는 모두 환청이다.
시간이 흐르고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허깨비와 환청도 흘러가고 있다. 순간과 찰나를 잡을 수가 없다. 사진기의 순간도 흘러간다. 당신이 무슨 존재를 찾고 있다면 헛된 일이다.
존재는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화하는 우주속성의 한 순간이다. 그 존재가 지닌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헛수고다. 장님이 보고 있는,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실상이 그러할까.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은 벌써부터 말씀하셨다. 모든 게 허상이라고, 영원한 실재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지 말라고... 오래된 일인데 당신들은 아직도 황하의 길이를 재고 있다. 비만 오면 황하는 범람하여 하북 평야를 뒤덮으며 물줄기를 바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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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할아버지들은 지평선 너머 그리고 바다의 수평선 너머에는 낭떠러지가 있어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살고 있는 땅은 평평하고 생전에는 가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무한히 큰 땅덩어리라고 믿었다.
땅 끝의 절벽 아래로는 지옥이 있음이 분명하였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 된다. 오십억 년 후의 일을, 아니 십만 년 후의 사정에 대해,
그 오래된 미래에 대하여 당신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태양이 힘을 잃어 천천히 부풀어 올라 지구까지 삼키고 마침내는 폭발하여 작은 백색 왜성으로 변하다고 누가 말한다 해도 그게 뭐 대수로울 것이 없다.
그래도 겁은 난다. 지금부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가까이는 하늘을 떠도는 혜성이 날아와 지구를 박살내고 당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천년후의 텍스트에는 어리석은 할아버지들의 무용담이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알파는 영화관이라는 어두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알지 못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자유이지만 알파의 눈에는 오로지 푸르고 둥근 별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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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점이, 모래알보다 더 작은 점이, 아마 수학적인 상상의 점이 130억 년 전에 폭발했다. 수천억 개의 은하수가, 은하수마다 수천억 개의 별이 태어났다
그보다도 더 많은 가스층이 생겨나고 그 속에서 수천억 개의 별들이 태어나고 소멸되고 있다. 우주라고 불리는데 그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팽창을 하고 있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그 끝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별들 사이에는 검은 에너지가 충만하다는데 어떻게 생겼을까. 빅뱅의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었을까.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은 애시당초 성립되지 않는 것일까. 하나의 은하수 한 가운데, 시간과 공간이 흐르고 있는 은하수 한 가운데
블랙홀이 있어 그 속에서 다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질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빅뱅 이전에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알파도 모른다고 했다. 당신이 이러한 이야기와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체험하여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식은 경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워서 인정을 한다. 장님이 어둠 속에서 빛도 없이 사과의 모양과 색깔을 알고 있음과 마찬가지일 터다.
그게 아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은 선험적일까. 사람들은 범주의 지배를 받는다. 범주의 규범은 우리의 통상적인 생각을 벗어나 있다. 부인도 할 수 없으니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선험적이라 한다. 그게 진리일까. 믿어야 할까. 노자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배움은 덜어낼수록 좋다는데 확실치도 않은 것을 왜 배우고 있을까. 훗설처럼 판단정지라도 시급하게 요청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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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별 안에서 대붕은 날개를 한번 펴면 천리를 난다. 귀뚜라미는 날개가 있지만 날아보아야 몇 미터다. 알파에게는 그게 그거다. 장자의 말씀은 언어이지만 알파에게는 약간 통하고 있을 게다.
나는 아직도 책을 읽고 있다. 텍스트가 지닌 허구성을 익히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호기심이 많은 터다. 진리라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려 한다. 대상과 인식이 일치하고 있는 실재를 찾으려 하고 있다.
헛수고를 하고 있으니 불쌍하다. 부처님은 해서 진리에 대한 질문을 답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저 대자대비한 웃음만 지으셨을 뿐이다. 언제인가는 에베레스트 산이 거꾸로 넘어져 우주 공간으로 흩날릴 것이다.
태평양 바다도 나락으로 떨어질 터. 그 안에 살고 있는 정어리떼, 명태들, 오징어떼, 해파리들... 모두가 가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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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는 오늘 관측을 포기한다. 알파에게는 측은지심이 없다. 수천억 개의 별들 중에서 푸른 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알파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알파는 전지전능하여
귀도 없고 눈도 없고 입도 없을 것이다. 그래야 초음파도 듣고 빛도 읽을 수가 있으며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알파는 정녕 사람과 똑같이 생겼을 것이다. 말도 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과 대화를 소통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알파는 부정될 수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 말한다. 알파는 본디부터 있을 수가 없다. 누군가 말한다. 알파는 이미 죽었다고.
알파가 떠나는 날, 당신은 종로 길거리 어느 주점에 앉아 폭음을 한다. 알코홀 하나를 이기지 못해 당신은 평소의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몸은 대기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흘러간다.
둥둥 떠다닌다. 사과가 떨어지듯이 당신은 언제나 발을 땅에 딛고 산다지만 그 이야기는 틀렸다. 사과와 함께 빛이 없는 공간으로, 아니 공간도 시간도 없는 그런 경계로 진입한다.
겁은 나지만 그게 순리다. 아니 순리라는 단어는 없다. 단어에 억매 살아왔을 때 편안하였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억울하다. 모든 게 거짓이니 말이다. 술이 취하였을 때 주위에 있는 사물들도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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