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차 박물관 |
날짜 : 2010-03-17 10:06:21 |
글쓴이 : Green |
조회수: 1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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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중 차와 관련된 찻그릇, 즉 잔盞은 매우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토기잔은 뜨거운 물로 된 음식(차)을 담았을 때 빨리 식지 않으며, 찬 물질을 담았을 때도 쉽게 미지근해지지 않는 특성을 지녀 계속 사용되었고 그 기술이 발전하였다.
가장 큰 발전을 보이는 가야시대의 토기는 형태가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사용도가 높아 신라보다 더 발달된 음료문화를 엿볼 수 있다.
차와 같은 기호음료의 발달은 문화적 수준이 높은 곳에서만 가능하였고, 즉 가야의 토기잔 문화는 음료를 기호품으로 마셨다는 높은 문화수준을 그대로 보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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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찻잔들은 가야가 정복당한 뒤 그릇을 만들던 장인들 대부분이 그 환경 그대로 전해져그릇을 만들었으며 토기잔이나 금속류의 잔형태는 오랜 기간 서로 닮은 부분이 엿보인다.
통일신라 후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그릇과 잔의 형태도 변화하였다. 백제의 찻잔은 가야와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과 함께 서해를 통한 중국교역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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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차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청자찻사발, 불교, 송나라와의 교류, 차살림의 보편화 등을 들 수 있다.
청자찻사발은 중국 월주요의 영항을 받은 한국의 강진요를 비롯하여 고창 용계리의 청자 가마터에서 만든 고려청자찻사발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널리 알려져있는‘햇무리굽 청자완'이다.
몸체는 삿갓을 엎어놓은 듯하고 햇무리굽다리는 넓고 낮으며 입지름은 15센티미터, 높이는 6센티미터 안팍이다.
이 찻사발은 차를 마시기 위해 만든 그릇이기 때문에 매우 정형화 되어있고 실용적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그릇의 가장 큰 특징인 햇무리굽은 중국에서는 옥벽형굽, 일본에서는 사목고태라 불리어진다.
굽의 폭은 1센티미터 정도로 넓고 높이는 낮으며 주로 완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월주요의 햇무리굽찻사발이 새롭게 고려화되어 만들어져 고려사회에서 널리 사용됨으로써 고려찻사발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찻잔을 갖게 된 고려시대의 차 문화는 화려하고 풍성하였다.
차를 마시는 이유는, 차맛을 즐기고 그 약효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차를 달이는 즐거움에 도취하려는 또다른 이유도 있었다.
고려시대의 찻그릇과 차도구는 여러 종류가 있다.
차맷돌은 단차를 쪼개거나 바순 뒤 가루를 낼 때 쓰였는데, 성종(成種,981~987)이 공덕재(功德齎)에 쓸 차를 손수 맷돌에 갈았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이인로(李仁老,1152~1220)의‘승원다마'라는 시에서는 차맷돌을 이용해 가루차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규보도 차맷돌을 선물받고 고마워하면서 시 한편을 남겼다.
차살림에서는 물을 끓이는 솥도 중요한 다구의 하나인데 솥의 종류도 석요, 당, 석정(石鼎), 철병(鐵甁) 등이 있다.
차도구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찻그릇(茶器)이다.
찻그릇도 여러 가지 였는데, 차를 담아두는 대바구니, 잎차를 마실 때 쓰는 구, 완, 사발, 주발등이 있으며 그 외 배盃 도 찻잔으로 사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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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차문화는 차마시는 법도를 중요시 여기기 보다는 차 마시는 행위와 차 달이는 분위기를 더 좋아하였다.
이런 이유로 야외에서 즐기는 차풍류茶風流를 더욱 세련되게 이어 갔다.
즉 차 도구나 찻그릇의 발전보다 좋은 차, 바로 차의 품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부분도 생겨나게 되었다.
즉, 즐기는데에 더 많은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차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는 못하였다.
고려의 차문화는 대부분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문인文人중심의 차문화가 생겨나 선가禪家의 차풍과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그러나 조선 왕실의 차문화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차가 포함된 여러 가지 행사가 술로 대체되어
사실상 차문화의 변질을 볼 수 있다. 반면, 후기 초의선사의 차 이론으로 차문화를 되살일 불씨를 지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잎차를 중심으로 말차와 단차를 고루 많이 마셨는데, 대체로 중기이후부터는 마시는 사람이 매우 적어지면서 찻그릇 또한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식민지 시대로 넘어가시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차도구는 잎차를 마시는데에 주로 사용되던 것으로 물병, 솥, 잔, 을 예로 들 수 있고, 찻잎을 따서 건조시키기 위한 대광주리, 잎차를 가루 내는 다연,차를 담아 보관하는 옥담(옥으로 만든 술병 모양의 차 보관그릇)등이다.
찻잔으로는 잎차를 말차로 만들어 마시는 데 쓴 배, 소완, 완, 구, 화구 등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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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아름다운 차 박물관 |
⊙ 홈페이지 : http://www.greenkorean.co.kr, hit: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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