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 전 부치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로 먼저 찾아오는 한가위
큰 명절을 앞둔 시장의 풍경을 누구나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시기의 시장은 먹을거리 풍성한 명절답게 어느 때보다 풍성한 모습을 갖춰 장터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명절 기분에 한껏 취하게 된다. 금방 갈아 만든 푸짐하고 뜨끈뜨끈한 손두부를 판매하는 집 앞에는 사람들이 얼굴에 김을 맞으며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때를 만난 떡집 주인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새로 나온 송편을 끊임없이 판에 쏟아놓는다. 전집 앞에서는 갖가지 다양한 재료의 전이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이들의 발을 붙잡는다. 노릇노릇한 모양새와 고소한 냄새에 집에서 전을 부칠 요량으로 이미 장을 본 사람들도 참지 못하고 몇 가지 전을 맛보며 미리 명절 기분을 느낀다. 광명재래시장에서는 이렇게 명절을 앞둔 장터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갈수록 물가가 올라 풍성해야 할 명절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은 아직 명절의 흥취와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이곳도 물론 ‘명절물가’라는 것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과일, 나물, 떡, 고기, 생선 등 차례상에 올라가는 품목들의 가격이 백화점이나 마트 대비 30% 정도 저렴하다. 또한 과일, 나물, 잡곡 등은 1천원, 2천원 등 소량 단위로 구매할 수 있다. 명절 음식을 위한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가서 가족과 나눠 먹을 간식까지 사든 후 1천원짜리 한 장에 찹쌀 도넛 두어 개를 입에 물고 나면 바리바리 봉지를 든 손이 뿌듯하다.
한가위 장보는 날 풍경 <광명재래시장>
갓 수확한 곡식에서 탱글탱글 윤기가 흐르고 열매는 곧 터질듯 익어 사방에 향을 내뿜는 가을 시장터. 명절이 즐거움보다 부담감으로 마음 무거운 이들에게 재래시장 나들이를 권한다. 큰 명절을 앞두고 한창 신명난 광명재래시장에서 흥정하는 재미로 장도 보고 고소한 전 냄새와 함께 어린 시절 향수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포토그래퍼 신지연 에디터 강윤희
1 금방 만들어 뜨끈하고 부들부들한 두부가 한 모에 1천5백원. 요즘에는 시장 두부집에서도 검은깨두부, 채소두부 등 다양한 두부를 맛볼 수 있다.
2 맛도 모양도 예술인 전집의 고추전.
3, 4 특히 나물과 채소, 과일 등의 가격은 마트가 재래시장을 따라갈 수 없다. 이곳에서는 저녁 장을닫을 무렵이 되면 마트처럼 반값 할인을 하기도 하니 참고하자.
저렴하고 신선한 청과·육류는 기본, 시장표 즉석가공식품까지
광명재래시장은 시장 규모로는 전국 5위 안에 꼽히고 광명 시민 70%가 이용할 정도로 활성화와 보존이 잘된 시장이다. 이렇게 활성화된 시장이라면 점점 사라져가는 재래시장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만도 한데, 이곳에도 걱정거리는 있다. 지역 일대가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시장 자리에 대형 복합상가가 들어온다는 것. 광명시장 정도로 시민의 이용률이 높은 활성화된 시장을 없애고 그 자리에 번쩍거리는 대형마트가 들어선다고 해서 시민의 만족지수가 더 높아질지, 시장통에서 느끼던 사람 사는 재미와 정취가 대형마트의 편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광명시장 상인들과 시민은 저렴한 가격과 맛깔스러운 먹을거리로 서민의 가계를 돕고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시장을 없애는 것에 반대하며 이곳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노력이 그 결실을 발하길 기원해본다. 올 추석에는 저렴하고 풍성한 재래시장에서 차례상 장을 보며 명절 정취에 듬뿍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1, 2 직접 만든 김자반과 톡 쏘는 홍어를 매콤하고 고소하게 무친 별미 반찬까지, 시장의 반찬가게에서 파는 품목은 그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3 푸릇푸릇 신선해 보이는 호박잎을 소량씩 묶어 판매하고 있다.
4 갖가지 화분과 식물의 씨앗 등을 판매하는 원예상 한 쪽에서 신기하게 미꾸라지도 판매되고 있다.
5 언제나 활기찬 시장의 채소 가게.
6 마트에서는 한 알에 1천원이 넘는 아오리 사과가 한 바구니에 1천5백원밖에 하지 않는다. 시장의 청과류는 기본적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가격대도 매우 다양해 용도에 맞게 구매할 수 있다.
7 광명시장을 지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8 한 사발씩 소량으로 판매되는 다슬기.
9 생닭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새파란 사과가 천연 방향제로 군데군데 얹어져 있다.
10, 11 시장표 ‘즉석가공식품’. 집에서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떡과 부재료, 양념이 들어간 떡볶이 세트와 직접 쑨 팥에 역시 직접 만든 새알심을 얼려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한 팥죽 세트. 이 외에도 그 자리에서 뽑은 칼국수 면과 냉동만두 등을 판매하고 있다.
12 약재상 앞 대야에서 자라 몇 마리가 꼬물대며 헤엄치고 있다.
13, 14 가게마다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메뉴를 구비하고 있는 시장 전집은 미리 주문할 수도 있어 명절 수고를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단골이 되면 푸짐한 덤을 얻기도 한다.
15 서글서글 사람 좋은 청과상 아저씨.
16 갖가지 건강 가루를 판매하는 약재상.
17 밭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노각이 할머니 손에서 금세 껍질이 벗겨지고 먹기 좋도록 가늘게 썰려 판매된다.
1 도넛과 중국식 호떡인 일명 ‘공갈빵’, 만주와 갖가지 옛날 빵을 파는 시장 빵집.
2 중국식 찐빵과 고기만두, 왕만두가 먹음직스럽다.
3, 4 설탕 없이 직접 쑨 팥죽과 호박죽. 담백하고도 진한 맛에 쫀득한 새알심이 그득 들어 있어 새알심만 골라 먹는 노력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호박죽과 팥죽 가운데 고민된다면 주인장에게 잘 보여 한 숟가락씩 시식해보자.
5 소량씩 판매해 더욱 좋은 추억의 옛날 과자가게.
6 광명시장에서 유명한 튀김집. 잡채, 두부 등 소가 한가득 든 고추튀김과 오동통한 오징어튀김, 떡볶이와 꼬마김밥 등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7 광명시장 또 하나의 명물 ‘할머니 빈대떡’. 엄청난 크기의 녹두빈대떡 한 장에 3천원, 오징어가 섭섭지 않게
가득 들어 있는 오징어빈대떡이 4천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보송보송하게 제대로 부친 그 맛으로 명절 때가 아니어도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8 전집 한편에서 판매되고 있는 팥 가득한 수수부꾸미는 한 개 5백원.
9 즉석에서 튀겨내는 뜨끈한 어묵은 종류도 다양하고 시식도 할 수 있다. 동글동글 작은 크기의 귀여운 어묵이 한 국자 가득 1천원.
10, 11 방송과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광명시장의 명물 칼국수집. 칼국수 한 그릇에 2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혹해 찾아왔던 이들은 푸짐한 양에 놀라고 걸쭉하고 진한 국물 맛과 손반죽의 투박함이 묻어나는 면발을 씹는 맛에 다시 놀란다.
12 각종 전과 빈대떡, 닭발 등 ‘술맛 나게 하는 음식’들만 모아 판매하고 있는 집 앞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13 시장에 없으면 섭섭한 먹을거리 족발과 보쌈.
14 시래기국, 육개장 등을 가마솥 한가득 끓여 국자로 판매하는 집에서 옛 재래시장의 정취가 물씬 난다.
15 자장을 솥에 끓여 한 사발씩 판매하는 모습이 색다르다.
16, 17 유명 도넛 업체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는 주인장이 자신만의 노하우와 자부심으로 만들어내는 도넛가게 ‘멜로디도너츠’.
하지만 간판은 없으니 알쏭달쏭하다면 ‘여기가 멜로디도너츠인가요?’ 하고 물어보면 된다.
안에 찹쌀떡이 통째로 들어 있는 듯한 이 집의 도넛은 어디에서도 먹어볼 수 없는 별미.
홍콩 야시장보다 화려한 먹자골목
홍콩이나 태국 관광을 할 때 빼놓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야시장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시장의 맛기행이 관광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동남아 시장 맛기행 못지않게 다양하고 저렴한 음식이 즐비한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광명재래시장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저렴한 가격의 맛있는 음식으로 한 나절 코스를 짜도 2~3일치는 나올 정도. 저렴한 가격과 푸근한 인심은 기본, 북적북적한 시장통에서 군침 도는 다양한 간식을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벙실벙실 웃음이 난다. 어찌 보면 흔하지만 시장에서 먹어야만 입에 딱딱 붙는 시장통 먹을거리가 총집합해 있는 광명시장으로 맛기행을 떠나보자.
원문 출처 푸드매거진「에쎈(http://www.mlounge.co.kr/e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