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이야기

한국의 5대 궁궐
날짜 : 2010-04-13 15:18:23 글쓴이 : Green 조회수: 1563

 

 큰사진보기!  창경궁(昌慶宮)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적 제 123호

창경궁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이었다. 1418년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편안히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지었다. 그후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喜王后), 덕종의 비 소혜왕후(昭蕙王后), 예종의 비 안순왕후(安順王后)를 모시기 위하여 성종 15년(1484)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 등 궁궐을 크게 짓고 창경궁이라 이름을 고쳤다. 이 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던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복구하였다. 순조 30년(1830)에 또 큰 화재가 나서 많은 궁궐건물이 불타버렸던 것을 순조 34년(1834)에 대부분 다시 지었으나 정전인 명정전은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된 이래 원형대로 보존되어 조선 왕궁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 제 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순종 3년(1909)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하였다.

 

 

 

 큰사진보기!  창덕궁(昌德宮)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사적 제 122호

창덕궁은 1405년(조선 3대 태종 5년)에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은 궁궐이다. 1412년 정문인 돈화문이 세워지면서 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1459년 세조가 궁궐의 규모를 넓혀 15만여평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궐 대부분이 불에 타 선조가 복구를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 2년)에 완료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궁궐일부가 소실되는 등 이후 크고 작은 불이 여러 번 일어났다. 특히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이 불에 타서 일본인들이 경복궁의 교태전과 강녕전을 헐어다 옮겨 지은 것이 대조전과 희정당이다. 창덕궁은 광해군 이후 고종까지 13대에 걸쳐 약270년간 정사를 본 궁으로 정궁인 경복궁보다도 오랫동안 왕들이 거처했던 곳이다. 지금의 총 면적은 135,212평에 궁전 건물이 13동, 후원에 28동의 정자와 누각이 남아있다. 조선시대 궁궐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됨으로서 국제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인류공동의 문화재로 공인 되었다.

 

 

 큰사진보기!
덕수궁(德壽宮)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사적 제124호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붙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하였다.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하였다.

 

 

 큰사진보기!
경희궁(慶熙宮)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신문로 2가)

사적 제271호




일제가 경희궁을 헐어내고 뜯어냈기 때문에 지금의 경희궁 자리에는 오직 흥화문이란 문루 하나만 서 있었다. 그럼 불운했던 광해군주와 경희궁의 창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다. 경희궁은 서울의 우백호인 인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사적 제 271호인 이 궁은 조선시대 별궁으로 광해군 때 건축되어 270여년간 궁으로써 사용되었다. 원래 '경덕궁'이라 불렸던 이궁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다해서 '서궐'이라고도 불렀다. 경희궁의 창건당시 규모는 자그마치 1천 5백칸에 이르렀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거의 폐허가 되어버렸다.

 큰사진보기!

광해군은 창덕궁이 단종과 연산군이 쫓겨난 흉궁인데다 경희궁 자리에 왕기가 있다는 풍수의 말을 믿고 그것을 누르기 위해 새로이 경덕궁을 짓기 시작한다. 광해군이 즉위 초부터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인 이유는 후궁 소생인 자신의 왕통에 대한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왕으로서 권위를 과시하고 왕위계승을 둘러싼 잡음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공사는 진행된다고 볼 수가 있다. 원래 경희궁 자리는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던 정원군 소유지였는데 이를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끝내 경희궁에는 입궐해 보지도 못하고 폐위되고 만다. 왕위에 오른 인조는 경운궁(현 덕수궁)에 유폐되어 있던 인목대비를 경덕궁(현 경희궁)으로 모시고 자신도 경희궁에서 정사를 보았다. 후에 숙종과 경종이 경희궁에서 태어났고 정조. 헌종. 철종이 경희궁에서 즉위하였다.

 큰사진보기!
경복궁(景福宮)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세종로동)

사적 제117호

경복궁은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전국 산사의 승려들과 1만 5천여 백성들을 동원해 10개월여만에 완성한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궁이다. 낙산, 인왕산, 북악산으로 둘러싸인 경복궁은 풍수상 길지의 요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태조때 390칸으로 완성됐으며, 그 후 더 크게 증축했지만, 그 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에 완전히 회신(灰燼)되어 버렸다.

⊙ 홈페이지 : http://www.greenkorean.co.kr, hit:330